[황산 칼럼] '깨진 유리창'의 교훈

황산 (칼럼니스트/인문학연구자) / 기사승인 : 2022-11-14 09:58:53
  • -
  • +
  • 인쇄
위기는 작고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
'디테일'은 모든 영역에서 필요하다


뉴욕시 구석진 곳에 한 건물이 있었다. 어느 소년이 심심풀이로 건물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쨍 소리를 내며 창문의 유리가 깨졌다. 하루가 지났지만 그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있었다. 그 누구도 유리를 교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소년은 매일 저녁 창을 향해 돌멩이를 던졌다. 다른 아이들도 가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건물의 모든 유리창이 깨어지고 마치 폐허처럼 변해 버렸다. 이 이야기는 그 유명한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의 배경 스토리다.

◇사소한 실수 방치하면 총체적 위기 초래

깨진 유리창 개념은 1982년 범죄 현상을 연구하는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만든 개념이다. 작은 범죄나 도덕적 해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만연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가령, 담벼락에 누군가 낙서를 했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곧 낙서투성이가 된다. 전봇대 아래 누군가 쓰레기를 버렸는데 이를 그대로 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더미가 되어 버린다. 담배꽁초가 가득한 골목 어귀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에서 깨진 유리창 법칙을 민첩하게 적용했다. 그 논리와 근거가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의 마케팅과 이미지 관리, 인사 및 조직 관리, 기업 문화 형성, 고객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 이 법칙을 응용했다. 고객의 작은 불만 하나가 기업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히기도 하고, 경영주의 갑질이나 직원의 작은 사소한 일탈이 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고 사소한 것이라고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매사에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소문이 나거나 소셜서비스(SNS)나 뉴스에 번지게 되면 일파만파 퍼져 수습하기 쉽지 않고, 한번 손상된 기업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를 망가뜨리고, 총체적인 위기는 사소한 실수들을 그대로 방치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리창 하나가 깨어지면 재빨리 수선해야 한다. 이를 위험의 조짐으로 받아들이고 민첩하고 진정성 있게 대응하지 않으면 건물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다.

◇작은 나사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어

2011년 3월 12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한 비행기가 이륙했다. 이륙 후 비행기의 소음과 떨림 등 이상조짐을 발견해 기수를 돌려 인천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그 비행기는 대통령 전용기였다. 3시간 만에 비행기는 다시 정상가동했지만 이 사고는 대통령의 외교 일정을 지연시켜 연쇄적인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심각한 기체 고장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관리 책임이 있는 공항과 KAL이 크게 혼이 났다. 비행기가 고장을 일으킨 이유는 정비 소홀이 1차적 원인이었다. 이후 그 비행기를 제작한 보잉사 전문가를 불러 그 비행기를 정밀 점검을 했는데 비행기의 고장 원인이 작은 나사 하나를 거꾸로 꽂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사는 작은 부품이다. 엔진이나 다른 중요 전자기기도 아니다. 단지 이음새 역할을 하는 보조부품이다. 여러 개의 나사가 아니었다. 단 1 개였다. 게다가 그 나사를 정확한 위치에 꽂았다. 단지 거꾸로 꽂았을 뿐이었다. 그 작은 실수가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를 회항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깨진 유리창 법칙이 주는 교훈과 일맥상통한다. 작은 것 하나가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은 것 때문에 대의를 그르칠 수 있으며, 미세한 불량이 판 전체를 폐기시킬 수도 있다. 소소한 것을 소홀히 여기면 많은 이들의 안전이 그대로 위협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작다고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내 삶의 작은 나사 하나가 잘못돼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나 기관 및 조직들의 장치들과 부품들은 과연 하자가 없는가? 개인의 실수나 하자들도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정치 사회 영역이나 권력 엘리트 및 지도자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 그 파장은 예측하기 힘들다. 엔진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도 이를 당연시하고, 관리 소홀과 난폭운전과 역주행을 해도 마냥 방치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디테일을 소중히 여길수록 완성도 높아

나는 글쓰기 강좌를 할 때마다 학습자들에게 '퇴고'를 거듭 강조한다. 퇴고란 작가 혹은 글쓴이가 자신의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원고를 거듭 다듬고 마무리 하는 작업을 말한다.

퇴고(推敲)라는 말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당나라에 '가도'라는 시인이 당나귀 위에 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밀다'(推)로 할까? '두드린다'(敲)로 할까?" 그는 자신이 쓰고 있던 시의 마지막 구절의 단어 하나를 붙잡고 궁리하고 있었다. '두드릴 고'(敲)를 쓰면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가 되고 '밀 퇴'(推)를 쓰면 "스님이 문을 민다"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때 거리에는 높은 관리가 행차하고 있었다. 가도는 단어 선택에 몰두하느라 길거리의 분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가도를 실은 나귀가 제멋대로 길을 가다가 높은 나리의 행차를 가로막아 버렸다. "무엄하도다! 이분이 누구신 줄 아느냐? 감히 행차를 가로막다니!" 가도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사죄했다. 가도가 나귀 위에서 딴 짓을 한 이유를 들은 그 관리는 진정한 문인이라고 그를 치하했다고 한다.

나귀 등짝에 앉아 작은 표현 하나를 두고서 골몰하는 가도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완전한 몰입 상태다. '단어' 하나를 바꾸면 글 전체가 달라진다. 그 표현이 자아내는 이미지나 울림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성을 다해 다듬고 수정하는 집요한 작업의 결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퇴고'(revision)는 글을 윤색하고 마감하는 작업을 강조하는 반면, 동양에서 '퇴고'는 섬세함과 끈기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작가나 예술가의 작업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대화와 관계들, 노동과 활동, 조직과 공동체, 정치인들의 언어와 정책, 리더들의 스타일과 사람 대하는 태도, 사업가들의 상품 제작과 고객 서비스 등 모든 영역에서 이런 섬세함이 필요할 것이다.

대작은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양질의 상품 역시 디테일(detail)을 소중히 다루는 기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상호 신뢰하는 관계 역시 인격적 교류와 누적된 신의를 통해 형성된다.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지지와 신뢰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 존재로서 '나'라는 작품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경험과 기질, 재능과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매순간 선택하고 행동하는 작고 소소한 것들의 총체이다. 성서는 '작은 일에 성실한 자가 큰일에도 성실하다'고 말한다. 도덕경 제27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정말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정말로 잘하는 말에는 흠이나 티가 없다.
정말로 계산을 잘하는 사람에겐 계산기가 필요없다.
정말로 잘 닫힌 문은 빗장이 없어도 열리지 않는다.
정말로 잘 맺어진 매듭은 졸라매지 않아도 풀리지 않는다."

이런 원숙도는 오랜 숙련과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마침내 이루어낸 것이리라.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탄소배출' 투자기준으로 부상...'탄소 스마트투자' 시장 커진다

탄소배출 리스크를 투자판단의 핵심변수로 반영하는 '탄소 스마트투자'가 글로벌 자본시장의 새로운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17일(현지시간) 글로벌

현대차 기술인력 대거 승진·발탁...R&D본부장에 만프레드 하러

현대자동차의 제품경쟁력을 책임질 수장으로 정준철 부사장과 만프레드 하러 부사장이 각각 제조부문장과 R&D본부장 사장으로 승진됐다.현대자동

KT 신임 대표이사 박윤영 후보 확정...내년 주총에서 의결

KT 신임 대표로 박윤영 후보가 확정됐다.KT 이사회는 지난 16일 박윤영 후보를 차기 대표이사 후보로 확정했다. 이날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박윤영 전

'삼성가전' 전기료 공짜거나 할인...삼성전자 대상국가 확대

영국과 이탈리아 등에서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절전을 넘어 전기요금 할인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삼성전자는 이탈리아 최대 규

[ESG;스코어]서울 25개 자치구...탄소감축 1위는 '성동구' 꼴찌는?

서울 성동구가 지난해 온실가스를 2370톤 줄이며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높은 감축 성과를 기록한 반면, 강남구는 388톤을 감축하는데 그치면서 꼴찌

대·중견 상장사 58.3% '협력사 ESG평가 계약시 반영'

국내 상장 대·중견기업 58.3%는 공급망 ESG 관리를 위해 협력사의 ESG 평가결과를 계약시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중소기업중앙회가 올 3분기까지

기후/환경

+

"재생에너지 가짜뉴스 검증"…팩트체크 플랫폼 '리팩트' 출범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정보의 진위를 검증할 수 있는 팩트체크 플랫폼 '리팩트'(RE:FACT)가 출범했다.에너지전환포럼과 기후미디어허브는 18일 서울 종로

기상예보 어쩌려고?...美 백악관 "대기연구센터 해체 예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부가 국립대기연구센터(NCAR)를 해체하려는 움직임이다.17일(현지시간)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자신의 X(

기상청 "내년 9월부터 재생에너지 맞춤형 '햇빛·바람' 정보 제공"

재생에너지 발전량 예측을 위해 기상청이 내년 9월부터 일사량과 풍속 예측정보까지 제공한다. 기상청은 '과학 기반의 기후위기 대응, 국민 안전을 지

'전력배출계수' 1년마다 공표된다...2023년도 '0.4173톤' 확정

2023년 전력배출계수는 1메가와트시(MWh)당 0.4173톤(tCO2eq)으로 공표됐다. 18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2월부터 '전력배출계수' 갱신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150개국 참여한 '국제메탄서약'...메탄규제 국가 달랑 3곳

지난 2022년 전세계 150개국이 2030년까지 메탄 배출을 30% 감축하는 '국제메탄서약'을 했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인다.18일 본지

트럼프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삭감' 美감사국이 감사 착수

트럼프 행정부가 실시한 청정에너지 보조금 삭감이 적법했는지 감사를 받는다.미국 에너지부 감사국은 1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결정한 약 80억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