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은행들 석유기업 '돈줄' 역할...1조유로 채권 발행 '들통'

이준성 기자 / 기사승인 : 2023-09-27 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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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파리협약 이후 1조 유로 이상 자금투자
직접 대출 막히자 채권 발행으로 우회해

유럽 은행들이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화석연료 기업들에게 채권 시장에서 1조유로(약 1455조9600억원) 이상을 조달하도록 도운 사실이 들통났다. 이 자금은 주요 국영석유기업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밝혀져 "파리협약 위배와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인베스티코 등 유럽 언론들의 합동보도에 따르면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이뤄진 1700건의 채권 거래를 분석한 결과 도이치뱅크(Deutsche Bank), HSBC, 바클레이즈(Barclays) 등이 화석연료 채권 판매를 지원했고, 그 결과 석유와 가스, 석탄 판매에 따른 이익을 계속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은행들은 신규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직접 대출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화석연료 기업들에게 금융지원을 은밀히 제공해왔던 것이다.

보통 채권은 기업이 특정사업이나 기업 운영을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한다. 채권은 회사와 채권을 구매하는 투자자 사이에서 사실상 차용증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은행들은 회사에서 구입한 채권을 고객 및 기타 투자자에게 대신 판매하거나 채권을 관리해주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또 은행은 국제채권 시장에서 투자자에게 채권을 판매하기전에 채권을 매입해 채권 판매를 보장한다. 이에 일반적으로 단일채권 발행에는 여러 은행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초부터 전세계 채권 시장을 통해 1조유로의 채권이 발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멕시코의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롤리오스 멕시코노스(Petróleos Mexicanos)와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Rosneft)가 주요 차입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시 이 국가들은 탄소중립을 통해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국영기업들은 채권 조달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것이다. 기후전문가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새로운 화석연료 프로젝트는 파리협약과 양립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멕시코 국영석유회사인 페트롤리오스 멕시코노스(Petróleos Mexicanos)는 2016년 이후 1150억유로를 채권을 통해 조달했다. 같은 기간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는 380억유로를 조달했고, 로즈네프트는 340억유로의 채권을 발행했다. 쉘(Shell)과 BP는 화석연료 채권을 통해 각각 310억유로와 290억유로를 대출받았다.

독일의 도이치뱅크, 영국의 HSBC와 바클레이즈, 프랑스 은행인 크레디트아그리콜(Crédit Agricole)과 BNP파리바(BNP Paribas)가 이 석유회사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준 은행들로 지목됐다.

도이치뱅크는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총 4320억유로를 조달하며 석유 채권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같은 기간 도이치뱅크는 석유 및 가스 부문의 '금융 배출량'을 2030년까지 23%, 2050년까지 90%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HSBC는 2016년부터 화석연료 기업을 위해 4230억유로를 조달하는 채권을 발행하는 동시에, 석유 및 가스 부문에 대한 재정적 배출량을 2030년 말까지 34%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 금융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바클레이즈는 파리협약 이후 몇 년동안 화석연료 회사들이 3500억유로 상당의 채권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은행은 자본시장 활동을 포함해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은행'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크레디트아그리콜과 BNP 파리바는 각각 3510억유로와 2950억유로를 조달하는 채권 발행을 도왔다. 크레디트아그리콜은 2050년까지 금융을 통한 탄소배출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으며, BNP 파리바는 올초 새로운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자금 조달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ESG 금융전문가들은 "특히 유럽 은행들을 대상으로 기후친화적인 정책을 채택하라는 압력이 커지면서, 은행이 화석연료 대기업과의 전통적인 대출 관계에서 벗어나 회사채 발행을 돕는 간접적인 지원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출 등 은행의 직접 자금 조달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는 가운데 채권 시장이 석유 프로젝트 자금 조달을 계획하는 대규모 화석연료 기업들의 '뒷문'으로 부상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들 은행들은 채권 판매 등 우회적으로 석유 기업에게 투자한 내역은 자사의 지속가능성 또는 ESG 보고서에 누락하는 '그린워싱' 또한 일삼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Copenhagen Business School) 지속가능성센터의 안드레아스 라쉬(Andreas Rasche) 교수는  "채권 인수 활동에 참여하면 은행은 석유 및 가스 회사가 발행한 채권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에 연루된다"며 "자금 조달을 돕고, 이 자금이 어디에 사용될지 알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기후캠페인 단체인 선라이즈 프로젝트(Sunrise Project)의 금융분석가 앨리스 델레마레 탕푸오리(Alice Delemare Tangpuori)는 "우리는 더이상 채권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며 "은행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채권의 영업사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석연료 회사들은 채권을 자금 조달을 위한 뒷문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회사들은 이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은행들이 기꺼이 이를 돕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따라서 규제 당국은 빠르게 채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녹색금융단체 리클레임 파이낸스(Reclaim Finance)의 지속가능한 투자 캠페이너 라라 쿠벨리에(Lara Cuvelier)는 "금융기관이 기업이 채권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도록 돕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끊고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여준다"며 "이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에 도달하겠다는 그들의 약속과 양립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번 조사는 은행과 투자자들이 채권을 포함한 모든 금융 서비스를 포괄하는 지속 가능금융 정책을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목된 은행들은 일제히 이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나섰다. 도이치뱅크는 "2016년 이후, 특히 작년에 석유 및 가스 부문에 대한 참여를 크게 줄였다"며 "화석연료 회사들을 위해 대출에서 채권 발행으로 사업 범위를 전환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HSBC는 취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바클레이즈 대변인은 "2020년에 다시 설정된 은행의 기후목표에는 직접 대출뿐만 아니라 채권 발행과 같은 자본시장 자금 조달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크레디트아그리콜은 "기후목표에서 채권을 제외하기로 한 결정은 2021년 COP26 유엔기후회담에서 은행연합이 채택한 방법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BNP파리바는 "화석연료에 대한 은행의 최근 진전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석유 및 가스 회사의 채권 시장 점유의 경우 2020년 3.39%에 비해 2023년에는 0.99%로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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