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멸종위기'...기후위기로 지구촌 언어 절반 사라진다

김나윤 기자 / 기사승인 : 2023-01-18 08:50:02
  • -
  • +
  • 인쇄
해수면 상승에 소수민족 강제이주
577개 소수언어 사라질 위기 직면
▲사라질 위기에 처한 577개의 언어를 나타낸 지도. 적도 아프리카 주변과 태평양, 인도양 지역 소수언어가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자료=The Language Conservancy)

태평양 연안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강제이주 당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원주민 언어 역시 멸종될 처지에 놓였다.

비영리단체 '언어보호단체'(The Language Conservancy)가 최근 공개한 '그린 언어지도'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으로 적도 아프리카 주변과 태평양 및 인도양 지역에서 사용되는 577개의 소수언어들이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언어학자들은 40일에 한 언어씩 죽고 있으며 기후위기로 그 손실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현재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7000개 언어 가운데 절반이 금세기말에 이르면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폭염과 가뭄, 홍수 그리고 해수면 상승으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면서 이미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터전을 떠났다. 이는 기후재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인구이동이 가장 많았던 지역은 아시아·태평양 인근으로, 특히 태평양 섬 국가의 이동규모가 가장 많았다.

아나스타샤 리엘(Anastasia Riehl) 캐나다 퀸스대학 스트라시어부 부장은 "언어는 이미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세계화와 이주'로 꼽았다. 소수민족끼리 사용했던 언어였는데 더이상 이 언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언어의 쓰임새가 소멸되는 것이다.

태평양은 토착어가 번성했던 곳이다. 뉴질랜드 마오리어위원회에 따르면 세계 언어의 5개 중 1개가 태평양에서 유래됐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의 경우는 국토가 1만2189㎢에 불과하지만 110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언어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111㎢ 당 하나꼴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이곳 역시 해수면 상승으로 잠길 위기에 놓여있다.

리엘 부장은 "소수언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허리케인과 해수면 상승에 취약한 섬·해안지역에 밀집해 살고 있다"며 "섬이나 해안이 아니어도 기온상승으로 생계로 삼고 있는 농어업에 위협을 받으면서 강제이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누슈카 폴츠(Anouschka Foltz)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 영어학 부교수는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태평양은 언어적 다양성이 풍부하며 어떤 언어는 화자가 수백 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해수면 상승 등 기후영향이 닥치면 공동체는 터전을 떠나 이들의 언어가 가치를 잃는 곳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미 소수언어 사용자들은 오랜 박해의 역사를 거쳐 1920년대에는 호주, 미국, 남아프리카, 아르헨티나 원주민언어의 절반이 멸종됐다. 기후위기는 남은 원주민언어와 언어가 담고 있는 지식의 '관에 박히는 마지막 못'인 셈이다.

그레고리 앤더슨(Gregory Anderson) 남아프리카대학 리빙텅연구소(Living Tongues Institute) 소장은 언어의 죽음이 원주민 공동체를 향한 "일종의 공격"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는 1900년대 미국, 캐나다, 호주, 스칸디나비아 국가 등지에서 원주민 어린이들을 기숙학교에 강제 입학시켜 모국어를 금지시킨 분명한 사례부터 억양이 강한 사람들을 구직에서 배제시킨 사례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국제연합(UN)은 이 위기에 대응하고자 지난해 12월 '국제원주민언어10년(International Decade of Indigenous Languages)' 프로젝트를 출범했다. 차바 커뢰시(Csaba Kőrösi) UN총회 의장은 원주민 공동체의 언어 보존이 "모든 인류에게 중요하다"며 "원주민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가 지니는 생각, 문화, 전통, 지식도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국이 원주민 언어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을 촉구했다.

뉴질랜드, 하와이와 같이 원주민 언어가 부활한 긍정적인 사례도 있다. 1970년대 하와이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고작 2000명, 대부분 70대에 불과했지만 하와이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세워지면서 오늘날 하와이어 구사자가 1만87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뉴질랜드에서는 1970년대 마오리 청년의 5%만이 마오리어를 사용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은 마오리족의 노력으로 현재 25% 이상이 마오리어를 쓰고 있다.

국제원주민언어10년 프로젝트 및 뉴질랜드 마오리어위원회의 일원인 라위니아 히긴스(Rawinia Higgins) 교수는 원주민 언어를 가리켜 "과거의 닻이자 미래의 나침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35년 전 사람들이 마오리어를 법의 보호를 받는 공용어로 만들기 위해 싸웠다"며 "마오리어는 한때 금지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10명 중 8명 이상이 뉴질랜드인의 정체성으로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니 카이파라(Oriini Kaipara) 뉴질랜드 방송인·언론인이자 마오리어 통역사는 '언어둥지'를 뜻하는 코항가레오(kōhanga reo)에서 조부모로부터 마오리어를 배웠다. 그에 따르면 마오리족은 이들의 언어를 통해 환경과 연결되는 독특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 가령 '마테마테아온(matemateāone)'이라는 마오리 고유어는 지구에 대한 "깊고 감정적이며 영적이고 육체적인" 그리움을 나타내며 "본질적으로 나의 소속을 의미"한다고 한다.

카이파라는 "우리 세대는 운 좋게도 토착어를 배울 수 있었지만 언어손실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위협"이라며 "원어민 세대가 지니고 있던 관습, 이해, 토착지식들은 사라졌다"고 전했다. 그는 "내 언어는 내 세계로 가는 관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토착어는 지역 원주민의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방글라데시의 한 연구에 따르면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원주민 청소년들이 알코올이나 불법물질 소비량이 낮고 폭력에 덜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SK이노, 독자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국제학술지 등재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성과가 국제학술지에 등재됐다.SK이노베이션은 자사가 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화학공학

KCC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 11년 연속 수상

KCC가 '2025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에서 지속가능성보고서상(KRCA) 제조 부문 우수보고서로 선정되며 11년 연속 수상했다고 4일 밝혔다.대한민국 지속

하나금융 'ESG스타트업' 15곳 선정...후속투자도 지원

하나금융그룹이 지원하는 '2025 하나 ESG 더블임팩트 매칭펀드'에 선정된 스타트업 15곳이 후속투자에 나섰다.하나금융그룹은 지난 2일 서울시 중구 동대

과기정통부 "쿠팡 전자서명키 악용...공격기간 6~11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전자서명키가 악용돼 발생했으며, 지난 6월 24일~11월 8일까지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

李대통령, 쿠팡에 '과징금 강화와 징벌적손배제' 주문

쿠팡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국내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이재명 대통령이 2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건에 대해 "사고원

이미 5000억 현금화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책임경영 기피 '도마'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1년전 쿠팡 주식 5000억언어치를 현금화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

기후/환경

+

희토류 독식하는 美국방부..."군사장비 아닌 탈탄소화에 쓰여야"

지속가능한 기술개발에 쓰여야 할 희토류가 군사기술 개발에 사용되면서 기후행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4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의 공동연

'아프리카펭귄' 멸종 직면...먹이부족에 8년새 '95% 급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서식하는 아프리카펭귄이 멸종위기에 직면해있다.5일(현지시간) 영국 엑서터대학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산림·어

기습폭설에 '빙판길'...서울 발빠른 대처, 경기 '늑장 대처'

지난 4일 오후 6시 퇴근길에 딱 맞춰 쏟아지기 시작한 폭설의 여파는 5일 출근길까지 큰 혼잡과 불편을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은 밤샘 제설작업으

[주말날씨] 중부지방 또 비나 눈...동해안은 건조하고 강풍

폭설과 강추위가 지나고 오는 주말에는 온화한 서풍이 유입되면서 기온이 올라 포근하겠다. 다만 겨울에 접어든 12월인만큼 아침 기온은 0℃ 안팎에 머

'쓰레기 대란' 막는다...위탁업체 못구한 지자체 '종량제 직매립' 허용

내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는 가운데 폐기물을 처리할 민간 위탁업체를 구하지 못한 지방자치단체에 한해 예외적으로 직매립이 허

폭설에 발묶였던 수도권...서울 도로는 5일 통제 해제

올해 첫눈이 10cm 안팎으로 펑펑 쏟아질 것으로 예보됐지만 퇴근길에 딱 맞춰 내린 폭설로 도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갑자기 내린 눈이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