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또 60% 죽었는데 '기후변화' 외면하는 정부...왜?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3-05-20 08:00:02
  • -
  • +
  • 인쇄
'응애방제 실패' 농가에 책임 떠넘겨
밑빠진 사후대책 '예방' 초점 맞춰야


매년 5월 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벌은 꽃가루를 옮겨 식물과 농작물의 열매를 맺게 한다. 인류 식량의 70%가 꿀벌에 의해 수확된다고 하니, 꿀벌은 생태계와 식량안보 차원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궤멸적 수준의 꿀벌 집단폐사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겨울 40만 봉군이 폐사한데 이어, 올겨울에 94만4000 봉군이 사라졌다. 지난해 피해규모의 2배가 넘는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2023년 4월 기준 피해율은 61.7%에 달한다. 벌통 하나당 1만5000~2만5000마리의 꿀벌이 살고 있다고 보면, 올겨울에 141억~236억마리가 죽은 셈이다.

이로 인해 농작물 수확량은 직격탄을 맞게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벌이 농작물의 꽃가루받이를 도와 벌어들인 공익적 가치는 12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우리나라 세계식량안보지수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인 39위다. 그만큼 우리나라 식량안보는 안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꿀벌의 연쇄적인 집단폐사는 결코 간과해서 안될 문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꿀벌의 집단폐사 원인을 '기후변화'로 지목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47.8만헥타르(㏊)에 달했던 밀원식물 면적은 한반도 기후변화로 40여년 사이에 14.6만㏊로 70%가량 줄었고, 아열대에서 서식하던 등검은말벌이 따뜻해진 우리나라 날씨에 활동기간이 100일 이상 길어지면서 꿀벌의 안전을 더 위협하고 있다.

기온변화는 기생충 꿀벌응애의 증식 속도와 생존 기간도 늘리고 있다. 양봉농가는 응애를 박멸하기 위해 더 많은 살충제를 살포할 수밖에 없고, 과다 살포된 살충제로 꿀벌의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이상고온으로 따뜻해진 겨울에 꿀을 채취하러 나섰다가 오후 4시 이후 기온이 급강하 하면 온도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사해 버리는 것이다. 영양실조와 병해충으로 날지 못하는 꿀벌도 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꿀벌의 집단폐사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피해규모도 축소하기 급급하다. 당초 농촌진흥청은 2022~2023년 월동벌 폐사 비율을 17.5%로 집계했다. 이에 양봉농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통계에 강력히 반발했다. 봄철 꿀벌의 먹이로 사용하는 화분떡 판매량은 꿀벌 규모를 파악하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올해 화분떡 판매량은 전년대비 55% 급감했다. 이는 사료를 먹일 벌이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규모를 축소하는 정부에 양봉농가들이 반발하자, 농림축산식품부는 돌연 "피해를 집계하는 방식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논의를 통해 집계 방식을 통일시키고 발표하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적을 것"이라며 농진청이 발표한 피해규모 수치를 철회했다. 피해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데도 피해규모를 산출하는 방식조다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꼴이다.

게다가 농림부는 지난 2월 대책을 발표하면서 책임을 농가에 떠넘겼다. 농가에서 꿀벌응애를 방제할 수 있는 적기를 놓쳤고, 방제약을 지나치게 많이 투여해 내성이 생기는 바람에 피해규모를 키웠다고 한 것이다. 농림부의 이같은 해석은 꿀벌 집단폐사 원인이 '기후변화'가 아닌 '꿀벌응애'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농림부는 "농가마다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직접적인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다"며 여전히 기후변화가 원인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양봉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받아들이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꿀벌 집단폐사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튀르키예에서 열린 세계양봉대회에서 에티엔 브루노 세계양봉연맹 양봉기술 및 품질위원장은 "오늘날 양봉업의 가장 중대한 위협은 기후변화"라고 단언했다. 올해 열리는 세계양봉대회의 핵심주제도 '기후변화'다. 이처럼 전세계는 기후변화에 양봉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 정부만 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태도는 '보상'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봉농가에서는 집단폐사에 대해 정부가 지원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농림부는 원인을 단정할 수 없기 때문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행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이상고온 등을 직접 원인으로 발생하는 병해충'을 '농업재해'로 규정하고 있지만 여기에 꿀벌의 집단폐사가 포함되는지는 해석이 분분하다. 논란을 해결하려면 농업재해 범위에 '원인불명의 꿀벌 집단폐사'가 포함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행법이 근거해 농가를 지원하든, 관련법을 개정하든 정부 차원의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농림부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꿀벌 집단폐사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꿀벌들의 면역력이 저하된 틈을 타 경기도를 중심으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돌기 시작했다. 부저병처럼 알과 애벌레가 썩어들어가는 증상이지만, 진행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한국꿀벌질병연구소 한 관계자는 "기존 바이러스 기반으로 검사를 해도 나오지 않아 감염성 질병인지 아닌지도 불명확한 질병"이라고 했다.

양봉농가들은 현재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이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양봉농가 한 관계자는 "양봉전문가는 많지만 질병전문가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도 아직까지 치료제는 없고 백신만 있듯이 결국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며 당국이 사후관리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출 것을 당부했다.

Copyright @ NEWSTREE All rights reserved.

뉴스트리 SNS

  • 뉴스트리 네이버 블로그
  • 뉴스트리 네이버 포스트
  • 뉴스트리 유튜브
  • 뉴스트리 페이스북
  • 뉴스트리 인스타그램
  • 뉴스트리 트위터

핫이슈

+

Video

+

ESG

+

SK이노, 독자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국제학술지 등재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성과가 국제학술지에 등재됐다.SK이노베이션은 자사가 개발한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이 화학공학

KCC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 11년 연속 수상

KCC가 '2025 대한민국 지속가능성대회'에서 지속가능성보고서상(KRCA) 제조 부문 우수보고서로 선정되며 11년 연속 수상했다고 4일 밝혔다.대한민국 지속

하나금융 'ESG스타트업' 15곳 선정...후속투자도 지원

하나금융그룹이 지원하는 '2025 하나 ESG 더블임팩트 매칭펀드'에 선정된 스타트업 15곳이 후속투자에 나섰다.하나금융그룹은 지난 2일 서울시 중구 동대

과기정통부 "쿠팡 전자서명키 악용...공격기간 6~11월"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전자서명키가 악용돼 발생했으며, 지난 6월 24일~11월 8일까지 공격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

李대통령, 쿠팡에 '과징금 강화와 징벌적손배제' 주문

쿠팡이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국내 첫 사례가 될 전망이다.이재명 대통령이 2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건에 대해 "사고원

이미 5000억 현금화한 김범석 쿠팡 창업자...책임경영 기피 '도마'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무단으로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한 쿠팡의 김범석 창업자가 1년전 쿠팡 주식 5000억언어치를 현금화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비

기후/환경

+

기습폭설에 '빙판길'...서울 발빠른 대처, 경기 '늑장 대처'

지난 4일 오후 6시 퇴근길에 딱 맞춰 쏟아지기 시작한 폭설의 여파는 5일 출근길까지 큰 혼잡과 불편을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은 밤샘 제설작업으

[주말날씨] 중부지방 또 비나 눈...동해안은 건조하고 강풍

폭설과 강추위가 지나고 오는 주말에는 온화한 서풍이 유입되면서 기온이 올라 포근하겠다. 다만 겨울에 접어든 12월인만큼 아침 기온은 0℃ 안팎에 머

'쓰레기 대란' 막는다...위탁업체 못구한 지자체 '종량제 직매립' 허용

내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는 가운데 폐기물을 처리할 민간 위탁업체를 구하지 못한 지방자치단체에 한해 예외적으로 직매립이 허

폭설에 발묶였던 수도권...서울 도로는 5일 통제 해제

올해 첫눈이 10cm 안팎으로 펑펑 쏟아질 것으로 예보됐지만 퇴근길에 딱 맞춰 내린 폭설로 도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갑자기 내린 눈이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 50MW 태양광설비 구축한다

기아가 RE100 달성에 속도를 내기 위해 오토랜드 화성에 50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구축할 예정이다.이를 위해 기아는 경기도 화성시에

폭염과 폭우에 시달린 올가을...육지와 바다 기온 '역대 2위'

올가을 평균기온이 지난해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4일 기상청이 발표한 2025년 가을 기후특성 분석결과에 따르면, 올 9~11월 평균기온은 16.1℃를 기

에너지

+

순환경제

+

오피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