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을 살리자④] 꿀벌이 감소하면...우리 식탁이 위험하다

이재은 기자 / 기사승인 : 2022-09-14 1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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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은 300% 늘었는데 꿀벌 개체수는 37% 감소
"이대로가면 우리도 2030년전 식량위기 닥칠 것"

올초 국내에서 약 100억 마리의 꿀벌이 집단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꿀벌 개체수 감소는 양봉농가 피해에 그치지 않고 농산물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본지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짚어보고, 꿀벌을 살리기 위한 대응방안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는 [꿀벌을 살리자 3편: 전세계가 '꿀벌 수난시대'...원인은 '기후변화' 지목]에서 이어집니다>


전세계 20여개 호텔 옥상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프랑스 아코르그룹의 페어몬트호텔은 수년전 '꿀벌없는 식탁'을 주제로 한 사진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꿀벌 개체수가 급감하자,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호텔 입장에서 그 책임을 통감하고 꿀벌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꿀벌없는 식탁'은 푸석푸석한 몇가지 종류의 곡물과 달걀이 호텔 조식의 전부다. 꿀벌이 직접 따온 벌꿀은 물론 아몬드, 블루베리, 오렌지 주스, 커피, 호박씨, 카놀라유, 딸기 등의 과채 및 견과류, 이를 사료로 삼는 가축들에서 나오는 육류 및 유제품까지 식탁에서 사라졌다. 페어몬트호텔은 "매 끼니를 먹을 때 세입에 한입씩은 꿀벌에 의존하는 셈"이라며 "꿀벌의 위기가 곧 우리 식탁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꿀벌은 가장 유능한 농사꾼


꿀벌은 인간 식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개체다. 특히 '꽃가루받이'를 해야 하는 농작물은 꿀벌이 수확량을 좌우할 정도다. 그만큼 꿀벌의 존재는 중요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국가 차원에서 양봉산업을 관리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꿀벌이 채취하는 꿀은 연간 185만톤에 달한다. 전세계 78억명 인구 1명당 연간 237g의 벌꿀을 먹고 있는 셈이다. 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는 "국내 양봉산업의 경제적 가치는 약 5500억원"이라며 "생태계 유지 및 농작물 생산은 물론 식생활과 같은 문화적 측면까지 고려한 부가가치까지 합치면 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해마다 꿀벌은 700조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과채류 생산에 있어 꿀벌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유능한 농사꾼이다. 벌꿀 1g을 만들기 위해  꿀벌은 약 8000송이에 달하는 꽃을 오가며 꿀을 모은다. 이렇게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면서 꽃가루를 옮긴 덕에 식물은 열매를 맺게 된다. 인류가 먹는 농작물의 70%가 이런 꿀벌의 꿀 채취 활동을 통해 얻어지고 있고, 전체 식량자원의 3분의 1 이상이 꿀벌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 왕립지리학회(RGS)는 꿀벌을 '살아있는 가장 중요한 생명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처럼 인류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꿀벌 개체수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 연구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세계에서 목격되는 야생 꿀벌 종류가 1990년 대비 25% 감소했다. 2017년 유엔(UN)은 전세계 벌의 3분의 1이 '멸종위기'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 제초제와 방제약 남용, 개간으로 인한 밀원식물 감소 등의 인간활동으로 꿀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기생충이 창궐한 탓이다.

국내 양봉산업도 이미 위기가 시작됐다. 양봉농가에서 꿀벌의 집단폐사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다 올초 전국적으로 100억마리에 달하는 꿀벌들이 단순 폐사가 아닌 '집단실종'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사태의 심각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 예년에 비해 6~7°C가량 최고기온이 높게 나타났다 뚝 떨어지는 구간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이를 감당하지 못한 꿀벌들이 시체도 남기지 않고 '실종'된 것이다. 이처럼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외부에서 폐사한 꿀벌은 국내 전체 개체수의 30%에 달했다.


◇ 과채농가 70% 꿀벌에 의존



'월동 봉군 실종사태'라는 유례없는 현상은 우리 식탁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사라지면 채소·과일 농가의 2차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딸기, 참외, 고추, 수박 등 27개 과채류 작목의 꽃가루받이에 꿀벌이 이용된다. '화분매개용' 벌을 대여하는 시장규모도 연간 450억원으로 결코 작지 않다.

특히 수박은 꽃가루받이 기간이 2주밖에 안된다. 이 기간에 필요한 화분매개용 벌통은 17만여개.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면 벌통을 대여하는 비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양구군 농업인단체협의회 김영복 회장은 "수박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정이 되느냐 안되느냐의 문제"라며 "2만주에 이르는 수박을 제때 수정하려면 꿀벌을 대체할만한 인력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이를 대신하면 꿀벌만큼 정교하게 꽃가루받이를 못할 뿐만 아니라 하우스 내부는 한낮에 40°C를 오르내리는 탓에 오전밖에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 김 회장은 "지자체에서 수정용으로 뒤영벌을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꿀벌보다 대여비용이 비싸고 활동범위도 좁아서 넓은 부지의 과수농가에 적합하지 않다"며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꿀벌"이라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 양봉생태과 이경용 박사는 "과채류 생산농가 10곳 중 7곳은 꿀벌을 활용해 꽃가루 매개를 한다"면서 "꿀벌 집단폐사로 벌통은 줄었는데 수요가 늘어나니 올해 벌통 빌리는 값이 평균 15~20% 올랐다"고 말했다. 일부지역에서는 수박 하우스 하나당 5~6만원하던 벌통 대여값이 7~8만원까지 올랐고, 참외는 12~13만원에서 17~18만원으로 인상됐다.

이 박사는 "딸기의 경우 사람이 직접 수분하면 꿀벌에 비해 중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기형과율은 85~100%로 높아진다"면서 "꿀벌을 통한 수분이 착과율이 높고, 기형과가 생겨날 확률이 낮아 생산성과 품질면에서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꿀벌 부족현상은 장차 농가소득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꿀벌 개체수 감소는 '식량위기' 신호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지난 50여년간 화분매개를 필요로 하는 작물은 300% 증가했지만 벌의 개체수는 37% 감소했다. 이 때문에 과채류 등의 농작물이 2차 피해를 보고 있고, 과채류와 곡물을 축산사료로 활용하는만큼 축산농가에도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같은 도미노 현상으로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남재철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2030년 이전에 식량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20년 기준 45.8%. 지난해 세계식량안보지수(GFSI) 순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32위를 기록했다. 축산사료용 곡물자급률까지 따지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 수준까지 떨어진다. 남재철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이 지역의 밀에 의존하던 이집트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지역은 최근 폭동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식량부족이 낳은 결과인데 우리나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식량문제는 안보문제"라고 단언했다. 경제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남 교수는 "특히 꿀벌은 식량생산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면서 "급격한 기온변화가 예상될 경우 사전 조기경보를 통해 양봉농가의 피해를 줄이거나, 밀원식재 및 꽃가루받이를 통해 탄소절감에 기여하는 분만큼 제몫이 돌아가도록 하는 등 장기적이고 다층적인 차원에서 꿀벌을 보호하고, 식량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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